학살로부터 탈출한 캄보디아인의 회고 vietnam - 2002 and on

완전한 공포 : 학살로부터 탈출한 캄보디아인의 회고




40여 년이 지난 오늘, 크메르 루즈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출을 회고한다.

잔인한 폴포트 정권하에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락손씨는 자신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그들의 일부가 되거나 고문을 받고 처형되거나 굶어죽는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는 자유를 위한 탈출을 결심했다.

락손씨는 1977년 10월의 어느날 밤 부모와 3명의 형제자매들과 집을 떠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20킬로그램 정도의 쌀, 몇 개의 밥그릇과 냄비, 옷가지 만을 들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목숨을 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 우리가 그때 그대로 머물렀다면 모두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같은 날 밤 락손씨 가족 외에도 4 가족이 베트남 국경으로 길을 떠났다.






당시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 정권하에서 고통을 받던 거의 모든 캄보디아 국민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즈가 일으킨 대학살로 수 백만명의 캄보디아인들이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 

캄보디아 국민의 25% 정도가 당시 죽어 나갔다고 보여진다.




40년이 지난 오늘 58세가 된 락손씨는 아직도 숨막히는 어둠과 뒤에서 따라오는 총소리,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

- 엄청난 공포와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안양성 떤쩌우군 떤푸마을에 살고 있는 락손씨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유하지는 못해도 황금색 논으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마을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1975년 폴포트와 그의 무리들이 나라를 점령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일을 시키고 하루에 2끼 만을 먹였지요.

그가 17살이 되던 해, 크메르 루즈는 그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완전 자급자족과 국가 정화를 위한 집산화를 통한 농업개혁의 일환으로 국민들을 강제 노동에 밀어 넣었다.
 
끔찍한 노예와도 같은 노동환경에도 아무도 반항할 수 없었다.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 제 사촌은 혼자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사회 단합을 해쳤다는 혐의가 씌워졌습니다. 어느날 그는 포박되고 눈이 가려져 어딘가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손씨는 떨면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떼로 죽어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군대로 차출되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영양실조 상태였다.

손씨는 이대로라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살고자 하면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베트남으로 도망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밤중에 어린 아이와 노인을 포함한 40명의 사람들이 짐을 싸서 마을을 빠져 나갔다. 

늘 그렇듯, 매일 밤 수 많은 크메르 루즈 군인들이 마을에 이어진 모든 길을 감시하고 있었다.

- 잡히면 그자리에서 죽는 것이었죠

사람들은 마을로부터 5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베트남 국경을 향해 동쪽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은 하수구와 수풀을 지나고 땅을 기어가며 이동했다.

- 경비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면 지면에 누워 진흙탕 속에서 기어갔습니다. 소지품들은 모두 젖어버렸지요. 벼들이 서있는 논바닥에 숨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위험과 죽음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동 중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뒤 쳐져서 따라오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발각되었다. 총소리와 비명 그리고 적막.

 
 - 모두 미쳐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 동생은 총소리를 듣고 울부짖었고 어머니는 동생의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씨는 지금 생각하면 머리보다 발이 얼마나 빨리 반응하고 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들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일행들은 해저물 무렵 버려진 한 마을에 당도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연기가 나면 위치가 발각될까봐 밥을 짓지는 못하고 생쌀로 허기를 채웠다.

밤이 깊어 잠을 청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곧 고함소리가 들렸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크메르 루즈들이 그들을 찾은 것이다.

- 우리는 바로 짐을 챙겨들고 논밭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일부 노인들은 이미 너무 지치고 약해져서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손씨는 말을 잠시 잇지 못했다.



다리가 너무 부어 움직일 수 없었던 할아버지.



-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은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손씨는 목이 메었다.


그들은 헤어짐을 슬퍼하거나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손씨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챙겨 달아나는 중 뒤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손씨 일행은 이후에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몇 번이고 경험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멀리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금색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진지로 돌아가고 있는 베트남 병사들이었다.

- 우리는 환호하며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들은 후미를 경계하며 우리를 앞세워 걸었습니다. 

손씨는 당시의 기분을 마치 새로 태어난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베트남 병사들과 함께, 손씨 일행은 베트남 남부 떠이닌성 처우탄군에 있는 안전지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1977년 말, 크메르 루즈가 공세를 올리자 손씨 일행들은 북쪽의 안장성으로 옮겨졌다.






안장성에서 손씨와 가족들은 정착을 하게되었다. 손씨는 나중에 같은 처지의 크메르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된다. 
  
 
- 프놈펜이 해방되고 저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옛집은 파괴되고 논도 없어졌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1977년과 78년 수 천명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베트남으로 망명했다.  

당시에는 현 캄보디아 총리인 훈센과 같은 정치인들도 베트남으로 피신했었다.

캄보디아 난민들은 캄보디아와 가까운 떠이닌, 빈프억, 롱안성 등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국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고 일부 난민들은 본국으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폴포트와 그의 무리들이 송환된 난민들을 살해하는 것을 알고 난민들을 더 돌려보내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




떤쩌우 마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캄보디아 난민들은 가난한 농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베트남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지역 당국도 최대한 경제, 문화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폴포트의 크메르 루즈 정권은 수 많은 캄보디아 국민들을 학살했다.

거의 180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1975년 당시 인구의 25%에 육박하는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또한 베트남을 침공하여 수 만명의 베트남인들을 살해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베트남 정부는 1979년 프놈펜에 진군하였다. 

1월 7일 프놈펜은 크메르 루즈로부터 해방되었다.

락손씨는 과거의 아픈 기억은 영원히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삶은 안정되어 있고 베트남을 제 2의 고향으로 삼은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도 하였다.



 

https://e.vnexpress.net/news/news/sheer-terror-a-cambodian-recalls-escape-from-genocide-3865828.html


덧글

  • 제트 리 2019/01/11 20:52 #

    크메르 루주 정권은... 두고 두고 까여야죠.... 캄보디아의 흑역사.......
  • 2019/01/11 2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채널 2nd™ 2019/01/13 06:10 #

    벹남이 대인배

    >> 크메르 루즈는 또한 베트남을 침공하여 수 만명의 베트남인들을 살해하기도 하였으며

    공산화된 벹남이 뜬금없이(?) 캄보지아를 쳐 들어간 줄로만 알았는데 ... 그 배경에는 통킹만 사건과 같은 일이 있었군요. 나 같았으면 캄보지아 전체를 다 먹어 버렸을텐데..... 역시 대인배.

    (글을 보니 국경에서 고작 몇 킬로 안 떨어져 있어서 쉽사리 도망이라고 가서 살아 남은 것 같은데 .... 이번 북조선에서 토낀 어떤 군바리처럼 수백 킬로 떨어져 있었으면 꼼짝없이 다 죽었을.)

  • Nachito volando 2019/01/14 11:28 #

    크메르 루즈의 화신이 대한민국에도 있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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